2010년 건강보험 수가 협상 과정에서 나타난 몇 가지 특징
김창보 (건강세상네트워크)
2010년 건강보험 수가와 보험료가 결정되었다. 전체적으로 건강보험 수가는 2.05% 인상하는 것으로 하고, 건강보험료는 현재보다 4.9% 높아진다. 건강보험 급여 확대와 관련해서는 여러 항목으로 나열되어 있지만, 2천억 원대의 규모로 보험료 인상률의 0.8% 수준에 불과한 규모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이번 수가 협상 과정에서는 예년에 비하면, 여러 특징과 함께 상당한 갈등을 드러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수가 협상을 평가하고 교훈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지면의 한계상 모든 평가를 담기 어려우니 몇 가지 특징과 문제점을 정리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1) 수가 협상 절차와 과정의 파괴 시도
수가 협상 과정과 방법에 대한 공급자 단체의 반발이 극에 달했다. 수가 결정을 위한 근거가 되는 연구 결과를 건보공단 측과 공급자 단체가 각각 진행하였고 이 결과에 대해 서로가 신뢰하지 못하는 문제는 사실 이번에만 나타난 특징은 아니다. 오래된 문제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급자 단체들이 건보공단과 수가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가입자 대표의 활동을 법적으로 정지시키겠다.’는 발언이 서슴지 않고 제기되는가 하면, ‘복지부 장관이 수가의 최종 결정권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게다가 건보공단과의 수가 협상이 결렬되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로 이월될 경우 수가 결정에서 페널티를 받게 된다는 그동안의 원칙마저 무너뜨렸다.
공급자 단체의 입장에서는 건보공단과의 수가 협상을 결렬시키고 건정심으로 가서 더 높은 수가를 받는 데 성공하게 되면, 사실상 지금까지의 수가 협상 과정을 무력화시키게 되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보자면, 올해 공급자 단체는 절반 이상의 승리를 거둔 셈이다. 내년 연말에 2011년 수가 협상 과정이 정상적일 수 있겠는가에 대한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되는 이유이다.
2) 수가에 대한 이해의 차이 충돌
이번에만 해당된 것은 아니었지만, 수가에 대한 공급자 단체와 가입자 단체, 그리고 건강보험공단의 이해 차이가 그대로 드러났다. 공급자 단체들은 수가가 원가의 70%에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을 지속하고 있으며, 수가 인상률에 물가 인상률과 임금 인상률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그러나 건강보험 수가가 원가의 70% 수준이라는 주장은 충분한 근거를 가진 내용이 아니다. 특히 과잉 투자 내지는 투입된 자원의 비효율적 운용 등을 감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수가 인상률이 물가 인상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사실 2008년 건강보험 수가는 1.94% 인상되었지만, 수가 인상과 급여 확대 등을 제외한 건강보험 재정의 순증가율은 6.4%나 되었다. 2009년에도 수가 인상률은 2.20%였지만, 실제 건보 재정의 순증가율은 8.7%였다. 이는 당시 물가 인상률 3.9%를 훨씬 넘는 수치이다.
더군다나 경제 위기로 인하여 물가는 오르고 임금은 오르지 않아 서민과 중산층의 실질 소득은 감소하고 있는데, 의료계의 수입이 감소하면 안 된다는 논리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국민을 위한 급여 확대보다 의료계의 수입 보장을 우선시 했던 복지부의 입장을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3) 총액예산제, 공단과 복지부가 먼저 꼬리를 내렸다
이번 수가 협상 과정에서 매우 특징적인 점은 ‘총액예산제’에 대한 긍정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는 구체적인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유는 황당하게도 복지부와 공단이 이에 대해 먼저 꼬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설사 총액예산제를 실시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향후 구체적인 준비 일정과 과정에 대한 합의를 이룰 수 있었다. 복지부와 공단은 이런 합의조차 만들지 못했다.
가입자 단체들은 총액예산제와 관련한 구체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더 높은 수가 인상률도 허용할 의향이 있음을 비추었다. 그런데도 결국 아무런 내용도 결정하지 못했다. 복지부와 공단의 전략 부재와 협상 능력 부족을 그대로 보여준 결과였다.
4) 건정심에서 건강보험 급여 확대 논의는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
올해 건정심은 사실상 수가 협상의 연장이었다. 건강보험 급여 확대 논의는 거의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복지부와 공단은 예전에 이미 세워 둔 급여 확대 계획만을 고집할 뿐, 가입자 단체와 공급자 단체 사이에서 이에 대한 논의와 협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가입자 단체에서는 복지부의 급여 확대 계획안을 포함하여 추가적인 급여 확대 안을 만들어 제출했는데도 이에 대해 정식으로 진지하게 다루어진 적이 없다. 의협, 병협과의 수가 협상에 휩쓸려 급여 확대는 진지한 고민 없이 결정되고 말았다.
이번 수가 협상은 건강보험이 출범한 이후 10번째 진행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10회의 과정에서 노하우가 축적되고 협상의 기술이 발달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지 못했다. 오히려 갈등과 반목이 더욱 두드러진 특징을 이번 협상 과정에서 보여주고 말았다.
이 때문에 공급자와 가입자, 정부 모두 이번 협상 과정에서 상당한 피로감을 느껴야만 했다. 이는 뭔가 문제가 있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의 체계가 효율적이지 못하며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해법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이에 대하여 시민 사회에서 보다 진지한 평가와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공급자와의 새로운 협상 전략도 세워야 한다. 또한 의료 공급자와 정부는 가입자 대표의 존재와 정체성을 인정하면서 협상의 파트너로 존중하려는 태도를 보여 주어야 한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속에서 협상이란 있을 수 없다. 협상이란 게 어차피 타자와의 과정이라면 타자를 인정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